* 뱀파이어 기사 93화, 대체 결말입니다.




"카나메-!!"

태곳적부터 내려온 깊고 진한 선혈, 그 붉은 피가 가슴에서 타고 흐른다.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지, 제 심장을 스스로 뜯어낸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미소 지을 뿐,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유우키."

쿵, 쿵. 아직 제 주인의 몸에서 떨어져나왔음을 알지 못한 듯 그의 손에 쥐어진 심장은 힘차게 박동했다. 그리고, 쿵, 쿵. 그 소리에 맞춰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크고 강하게, 작고 미약하게. 마치 두 개의 심장이 공명이라도 한 듯 두 개의 박동소리가 온몸을 휘감았다. 경악할 만한 상황에 그녀의 심장이 미쳐버린 걸까.

"카나메, 그러지 마! 제발..-!!"

무너질 듯 주저앉고만 그녀가 오열했다. 이미 말라버린 눈물조차 치미는 감정을 주체못하고 더없이, 회한과 통곡의 소리가 되어 흘러나왔다.

얽히고 섞인 감정이 끝내 찢긴 그날ㅡ.

ㅡ스치듯 마주한, 시리게 아픈 네 개의 눈동자, 그리고
ㅡ이를 슬프도록 지켜보는 두 개의 눈동자만이 오롯이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얼음꽃이 피어나는 날에,

길고 긴 모든 것이 끝을 맺는다... 그리움도, 기다림도ㅡ.

 

 

 

 


1.


내리쬐는 5월의 햇살이 선명했다. 마치 이 세상에 축복을 내리듯, 무릇 어머니의 자애처럼 따스했다. 총총, 뛰어가는 여자아이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시선에 닿는 모든 것이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기웃거리는 모양새가 귀여웠다.

"쥬리, 그러다 넘어져. 조심해."

제 엄마의 걱정스러운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여자아이ㅡ쥬리는 더욱 힘차게 뛰어다녔다. 쥬리. 안 넘어져, 엄마. 저를 부르는 엄마ㅡ유우키의 목소리에 쥬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진짜 안 넘어진다니까."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쥬리는 유우키의 곁으로 후다닥 달려와선, "자 봐?" 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나 못하면. 하여간 요 고집쟁이. 대체 누굴 닮았을까 몰라."

"그야, 엄마 딸이니까 엄마 닮았겠지."

곧장 답하는 쥬리는 역시나 한 치의 굳힘이 없었다. 엄마는 아니거든? 엄마 맞아. 모녀지간에 설전 아닌 설전이 오가며 웃음꽃이 피었다.

"엄마가 굳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아빠 닮았나 보지 뭐."

헤헤거리며 웃는 모양새가 아이답게 천진난만했다. 하지만, '아빠'라는 그 단어 하나가 제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에 유우키는 가슴 한쪽이 시렸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가 없었기에 그 품에 단 한 번도 안겨본 적이 없는 아이. 다정스럽게 그 이름 한 번 불려보지도 못한 아이. 그래서 아이에게 '아빠'는 늘 그립고 또 그리운 존재였다.

"그러게, 아빠 닮았나 보다."

사실 쥬리는 제 아버지를 닮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인 자신을 닮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농담처럼 주워온 아이 아니냐고 놀리곤 했다. 처음에는 그 말에 아이가 울어버리며 진짜 나 주워온 거냐며 묻기도 했었는데. 넌 할머니를 닮았어, 아주 많이. 할머니가 엄마를 낳아준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던 차였기에 쥬리는 금세 울음을 그칠 수가 있었다.

쥬리, 그 이름처럼 아이는 제 할머니를 무척이나 닮았다. 커갈수록 그게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자신을 지키고자 목숨마저 버렸던 여인. 처음에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은 마음에 자책도 많았고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서야, 이 아이를 키워가는 내내 알게 되었다. 어머니 쥬리, 아버지 하루카. 부모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행복했음을. 내 아이를 지킬 수만 있다면,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못할 것이 무에 있을까.

"엄마?"

쥬리가 갸웃거리며 유우키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유우키는 그 눈에 시선을 맞추고선 아이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댔다. 쿵, 쿵. 크고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절대 약하지도 않았다. 작고 여리지만, 힘차게, 있는 힘껏,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듯 그렇게.

"우리 딸, 행복하니?"

"응."

난데없는 물음에 쥬리는 의아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즉각 대답했다.

"잊으면 안 된다? 꼭 기억해. 알지?"

"응."

연이은 질문에도 쥬리는 막힘이 없었다. 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제 엄마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그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 전 다녀온 묘소, 제로의 무덤. 말이 무덤이지 비석이 전부였지만, 비석에 적힌 그 이름은 쥬리에게도 의미가 깊었다.

엄마의 오래된 친구이자 소중한 존재. 그가 행복하길 늘 바란다고,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아련하고 애틋해서 아이 마음에도 그 이름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들은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알게 된 부모님과 제로라는 남자의 관계, 그 오래전 이야기. 의미는 달라도 끊어낼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엮인 세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궁금해. 만나고 싶어ㅡ.

ㅡ자뭇 그 생각에 잠들지 못했던 어느 날.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선혈이 대지를 메우고 비피린내가 자욱한, 그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 잘, 컸구나. 』

자신을 죽이려는 뱀파이어들을 모조리 흙으로 돌려보내고, 끝내는 그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뱀파이어이면서도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헌터. 그 얄궂은 운명을 남자는 그답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답지 않게 끝을 내었다. 어린아이를 죽이려고 미쳐 날뛰는 뱀파이어들을 모조리 죽였다. 헌터다웠다. 하지만 그가 지킨 아이는 뱀파이어, 것도 그가 증오하는 순혈종. 지극히 모순이었다.

『 네가, 카나메 딸이라서. 』

죽어가는 순간, 그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였다. 어째서? 유우키의 딸이라서 널 살렸다, 그렇게 말했더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는 어머니가 아닌 자신을 바라보며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간 품었을 미움, 원망, 증오, 그 많은 억압과 고통을 이제는 벗어던질 수 있었던 걸까. 마지막 미소가 아름다웠다. 그는, 슬프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아주 편안하게, 그렇게 영원히 잠들었다.

잊으면 안 된다. 잊을 수도 없다ㅡ.

ㅡ'쿠란 쥬리'는 '쿠란 카나메'에게서 태어나 '키류 제로'가 지켰다. 자신은 그의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기억해. 언제나 기억할 거야."

다짐 같은 딸의 말에 유우키가 빙긋이 웃었다. 그럼 이제, 만나러 갈까? 응, 응. 이번에 만나러 가는 사람이 누군지 잘 안다는 듯, 기다렸다는 듯 쥬리가 활짝 웃었다.



2.


"괜찮아?"

"뭐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루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 시선 그대로 카인에게 돌려주었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

대체 자신이 뭘 안다는 건지, 남편의 이 같은 반응은 가끔 엉뚱하게 느껴졌다. 물론 오늘, 지금 이 순간,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뻔히 보이지만.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시답잖다는 듯 웃어버렸지만, 루카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나왔다. 카인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루카의 손을 꼭 쥘 뿐이었다. 언제 어느 때고 자신을 지켜주는 남자. 그 든든한 남편의 존재에 루카가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떨림이 멈춘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하나부사는 늦는다고 했어?"

"글쎄. 그런 말은 없었는데."

달칵. 문이 열렸다. 늦어서 미안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하나부사가 성큼 들어왔다.

"어디 갔다 온 거냐?"

"그 녀석한테."

가타부타 다른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카인도 루카도 제대로 이해했다. 하나부사가 말하는 그 녀석이 누구인지, 버릇 같은 그 명칭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키류 제로.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 뱀파이어이자 헌터라는 모순을 안은 사람답게,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참혹했고, 또한 장엄했다.

"가는 길에 유우키 님과 쥬리 님을 만났어."

"그래, 그랬겠지."

카인이 동조했다. 루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니까, 바로 '오늘'이니까. 두 사람은 그를 만나러 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 녀석한테는, 평생 빚진 기분이야."

하나부사가 자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주군을 대하듯 쥬리를 지키고자 마음먹은 이가 '아이도 하나부사', 바로 그였다. 머리카락 한 올,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행복한 미소가 절대 사그라지지 않게, 그렇게.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는 쥬리의 곁에 있지 못했다. 제로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뱀파이어와 헌터 간의 전쟁은 쿠란 가의 시조가 제 심장을 용광로에 던져넣은 그날 이후, 헌터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헌터에게 목숨을 잃은 뱀파이어가 몇인지 셀 수도 없었으며, 개중에는 순혈종도 다수 포함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뱀파이어들이 증오의 대상을 찾는 건 당연했을 터. 실상 그들의 증오 대상이라고 한다면, 이 지경으로 상황을 몰고 간 카나메가 되겠지만, 그는 심장이 뜯긴 채 가사상태에 빠져 쿠란 저택의 비밀스러운 장소인 석실에 안치된 상태였다. 손이 닿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죽은 자나 다름없는 이를 어떻게 해봐야 화가 풀리지 않을 건 자명한 일. 그렇다고 쿠란의 공주를 직접 상대하자니, 그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따라서 그들이 선택한 이가 바로 카나메가 남긴, 그의 한 점 혈육이었다.

'쿠란 쥬리'ㅡ아이는 성장이 더뎠다. 비슷한 나이 또래들이 성인의 모습에 가까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이는 고작 일곱 살 남짓, 여전히 '아이' 그 수준이었다. 순혈종임에도, 더욱이 쿠란 가의 시조인 아버지와 쿠란 가의 마지막 공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장 깊고 진한 쿠란의 피를 타고났음에도, 아이는 좀처럼 성장하지 않았다.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아이보다도 더 여리고 힘없는 존재였다. 그런 아이가 뱀파이어들에게 증오의 대상, 즉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ㅡ, 그것도 '오늘'부로 끝이 날 것이다.

말하지는 않아도 뱀파이어라면, 누구나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ㅡ.

"난, 쥬리 님께 평생 빚진 것 같아."

루카가 나직이 속말을 토해냈다. 카인은 말없이 루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작은 몸이, 그 여리디여린 아이가 무엇을 견뎌냈는지. 루카는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나부사는 이미 얼굴을 들지 못했다.

『 카나메는 돌아올 거에요. 난, 계속 기다릴 거에요. 쥬리와 함께. 』

그 언젠가,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뜯겨나가고도 온전히 살아있는, 물론 살아있다는 말에는 어폐가 따르지만, 먼지가 되어 사라지지 않은 그는 그저 잠을 자는 사람처럼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마치 살아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시 눈을 뜬다는 건 어불성설, 그녀의 헛된 바람일 뿐.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 쥬리가, 그를 살리고 있어요. 카나메를, 계속 살게 하고 있어요. 』

그녀가 말하길ㅡ그날, 심장을 제 손으로 뜯어낸 아버지를, 고작 점에 불과했던 아이가 스스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태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상태지만 그 깊고 진한 피의 주인답게, 제 아버지를 살리고자 이어진 피를 타고 흘러 심장을 공유했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하지만 결코 환상이나 꿈이 아닌 기적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아이의 몸과 마음은 작고 보잘것없었다. 보통의 뱀파이어도 아니고, 쿠란 가의 시조인 아버지와 공명해 그의 뜨거운 피를 견딘다는 건 아이에게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성장이 더디고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 건 자명했다.

"그래도, 고마워. 평생 빚진 기분으로 살아도, 죄인처럼 산다 한들.. 쥬리 님께 감사해."

루카가 끝내 눈물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어떤 불순한 감정도 섞이지 않은, 깨끗한 순수성. 그녀의 미소가 그래서 더 눈부셨다.

"루카, 울지 마."

"기뻐서 그래. 드디어 '오늘'이잖아."

"그래."

아이는 더디지만 조금씩 성장했다. 제 안의 피와 아버지의 피를 모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심장이 단단해졌다. 쿵쿵, 쿵쿵. 카나메와 쥬리의 심장이 공명하는, 들릴 리가 없는 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길고 긴 기다림이 끝날 때가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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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거세게 요동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깊은 잠을 깨우는 태고의 목소리. 그 끌림에 눈이 떠졌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빛의 향연.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비된 듯 늘어진 몸이 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금세 목을 태우는 피의 갈증, 그 갈망에 절로 몸이 움직였다. 무엇일까, 이 기시감은. 언젠가 이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ㅡ, 뿌연 머릿속에 떠오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 너를 이 관에서 깨운 건 바로 나, 쿠란 리도. 잊지 마라, 내가 네 주인임을. 』

정말 지독하군ㅡ.

카나메는 그때처럼 또다시 눈을 뜨고만 자신에게 실소했다. 심장을 뜯어내고도 죽지 못했다. 벌써 두 번이나 안식을 방해받았다. 태초의 하늘이 자신을 이다지도 미워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제게는 끝없는 절망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체가 되어서도 살아가야 할 만큼 그렇게.

"...... 유우키."

그나마 절망 속에 그리운 이름 하나가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피의 갈증보다 더한 그리움이 곧장 카나메를 휘감아 돌았다. 쿵, 쿵. 심장이 고동쳤다. 웃음이 났다. 이미 제 심장은 없건만 죽은 육신 속에 울리는 심장 소리라니, 자신은 이미 미쳐버린 걸까.

『 안녕, 아빠. 』

쿵ㅡ. 심장이 말을 걸었다. 피가, 다시금 요동쳤다. 자신과 같았지만 묘하게 다른, 따뜻한 선혈이 제 몸을 감싸 안았다.

“안녕, 아빠.”

심장의 부름이 곧 낭랑한 목소리가 되어 귓가에 선명히 와 닿았다. 뜨거운 심장과 붉은 피가 박동하는 작고 여린 몸.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방긋 웃는 미소가 누군가와 많이도 닮았다. 쿵쿵, 쿵쿵. 심장이 뛰었다. 마치 내 것인 듯 아이의 심장이 제 안에서 움직였다. 아ㅡ. 기억이 스며들었다. 심장의 고동소리에 맞춰 아이의 기억이 제게로 흘러들었다.

꿈이, 아니었구나. 네가, 정말 있었구나.

깊은 어둠 속에서도 기억하는 단 하나. 유우키의 품에 안겨서 제게 말을 걸던 그 아이. 배시시, 웃는 그 미소가 어여뻐서 아, 이게 안식인가 보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던 순간이 있었건만.

"어서 와요, 카나메."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유우키가 눈물 섞인 미소를 지었다.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요. 꼭 그렇게 말하는 듯한 그녀의 인사에 카나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카나메, 이제는 행복해져도 돼. 』

까마득한 옛날, 그 오래전. 처음 자신을 '카나메'라고 불렀던 '그녀'가 웃는 것만 같았다. 몇천 년간 끝날 줄 모르던 고독이, 외로움이 비로소 다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제 피를 이은 귀여운 아이. 목이 메고 가슴이 떨렸다. 아빠. 아이의 심장이 다시금 저를 불렀다.

카나메가, 천천히 유우키에게 손을 내밀었다ㅡ.

ㅡ일그러진 아픈 미소가 아니라, 행복이 묻어나는 미소가 그의 입가에 맴돌았다.

"다녀, 왔어... 유우키."

by 아르튀르 | fanfic |